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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설득은 과학이다

by 왈리와 2023. 7. 12.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력을 믿습니다. 내가 내리는 결정은 온전히 나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요. 하지만 실은 당신의 결정을 조종하는 최면술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나요? 심지어 그들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설득은 과학이다

 

 

족제비를 키우는 칠면조

칠면조는 새끼를 극진히 보살핍니다. 깨끗이 닦아주고 체온을 유지하여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죠. 그런데 놀랍게도 천적인 족제비를 새끼 칠면조처럼 보살피는 어미 칠면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족제비에게 "칩칩" 소리를 내는 녹음기를 달아놓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새끼 칠면조는 "칩칩"하는 울음소리를 냅니다. 어미 칠면조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새끼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칩칩하는 울음소리인 겁니다. 외모, 냄새, 촉감마저 그 울음소리에 비하면 부차적인 요소인 듯 합니다. 얼핏 보면 바보 같고 우스꽝스러워도, 칠면조뿐만이 아닌 광범위한 생물 종에게서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존전략입니다. 뇌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부담스러운 기관입니다. 판단할 때는 최대한 간단한 프로세스를 거치는 게 효율이 좋겠죠. 건강하고 기를 가치가 있는 새끼인지 판단하기 위해 "칩칩" 소리만을 근거로 채택하는 것은 제법 합리적입니다. 자연에는 박제된 족제비에게 녹음기를 다는 심술궂은 과학자들이 없으니까요.

 

 

 

인간 역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새와는 다르죠. 더 명료한 체계를 통해 상황을 판단합니다. 족제비를 껴안은 칠면조처럼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요? 애석하게도, 인간 역시 동물인지라 최적화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엘렌 랭거과 동료 연구진(Langer, Blank & Chanowitz, 1978)은 재미있는 연구 하나를 고안해냈습니다. 누군가에게 부탁할때 이유를 밝히면 더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전제였는데요. 실험에서 랭거는 도서관 복사기 앞에 있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례지만, 제가 서류 다섯 장이 있는데, 복사기를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 왜냐하면 지금 제가 몹시 바빠서요."

 

요청을 받은 사람 중 94%가 흔쾌히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반면에 "실례합니다. 제가 서류 다섯 장이 있는데, 복사기를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라고 물었을 때는 60%만 승낙했습니다. 당연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랭거는 다음에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실례지만, 제가 서류 다섯 장이 있는데, 복사기를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 왜냐하면 제가 복사를 좀 해야 하거든요."

 

결과는 93%의 승낙으로 나타났습니다. "왜냐하면" 뒤에 붙은 문장은 사실상 전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반복에 불과한데 말이지요. 칠면조의 칩칩 소리처럼, "왜냐하면"이라는 단어가 설득의 성공률을 30%나 높인 겁니다. 사람들이 마치 버튼이 눌린 듯 판단에 고정관념이나 심리적 습관을 이용하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싼게 비지떡

인디언 장신구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격 대비 품질이 훌륭한 터키석 장신구가 전혀 팔리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죠. 주인은 판매를 유도하기 위해 장신구를 상점 중앙에 배치하거나, 판매원들에게 터키석 장신구 구매을 강력하게 권유해보라고 지시했지만, 고객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결국 주인은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출장을 가기 전에 판매원에게 쪽지를 남긴 겁니다. '진열된 물건을 전부 원래 가격의 1/2로 판매할 것!' 주인은 출장에서 돌아온 후 장신구가 완판된 진열장을 보고 그러려니 하지만, 이내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매니저가 1/2이라고 흘려 쓴 글씨를 '2'로 착각하고 터키석 장신구들을 두 배의 가격으로 팔아버렸던 것입니다. 그것도 전부!

 

 

 

설득에는 왕도가 있다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판단을 무의식에 맡깁니다. 문제를 파악할 때 의식이 열심히 돌아가는 듯하지만, 저도 모르게 사회적, 생물학적 관습과 신념에 결정권을 위임합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여행객들은 "좋은 것은 비싸다"라는 관념을 통해 의사결정의 지름길을 택한 셈입니다. 안심하고 질 좋은 제품을 사고 싶었기에 저렴한 제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죠. 이처럼 대다수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판단 규칙서들이 있습니다. 설득에 능한 사람들은 이 규칙서를 이용해서 자발적인 호의를 얻고 좋은 협상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심리학을 이용한 설득의 무기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